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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워 울지 마라 골라앗 노동자
 어처구니  | 2010·11·02 18:37 | HIT :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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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사람과 사회]
비정규직과 연대하다 몸과 마음 다친 정규직 노동자…
현대미포조선 김석진씨와 폐암 투병 아내의 겨울 미포만




      

현대미포조선에서 근무하는 김석진(50)씨와 그 아내인 한미선(46)씨. 복직 뒤 겪은 따돌림과 감시 등에 대해 얘기하던 한씨는 “복직 뒤가 더 힘들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사진=한겨레21 류우종 기자>



30년을 근무한 직장에서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울산 현대미포조선 장비운영부 기계정비팀 김석진(50)씨는 유령이 됐다. 70여 명이 그 앞에서 침묵한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반장이 그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곳은 동료들이 없는 구석이다. 파손된 기계를 용접하고 그라인딩한다. 30년 고참이 전담할 일은 아니지만, 환경은 그나마 나아진 편이다. 지난해에는 “‘기만과 거짓’ 너의 욕심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일터를 말아먹으려는 자’ 당신을 규탄한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곳에서 일했다. 그를 향한 비난이었다. 기계정비팀 명의로 걸린 현수막은 지난해 9월까지 6개월 동안 걸려 있었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한 동료는 “우리 모두의 뜻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30년지기 동료들은 왜 그에게서 등을 돌렸을까? 지난 10월20일 울산의 김씨 집을 찾았다. 김씨와 그의 아내 한미선(46)씨가 환한 얼굴로 반겼다.

30년 동료의 외면

김씨는 1980년 현대미포조선에 입사했다. 동료들은 운동을 잘하고 붙임성 좋은 그를 믿고 따랐다. 1987년에 노조 집행부에서 일한 뒤, 그는 줄곧 현장 대표였다. 그러던 중 노조대의원으로 있던 1997년 노조 유인물이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그리고 8년3개월 동안 복직을 위해 싸웠다. 부부가 나란히 앉은 너머로 ‘대법원의 복직 판결 직후 사진’이라는 제목 아래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이 보인다. 부부와 두 딸은 목젖이 보이도록 웃고 있다.

문제가 터진 것은 복직한 지 3년쯤 지난 2008년이었다. 김씨가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다. 그해 마지막 날, 동료들은 자필 편지를 보내왔다. “회사 기강을 문란케 하여 안전사고 위험을 높이고 반원 간 친화와 화합에도 위배되며, 반원 간 불신의 원인”이라고 자신을 지목했다. “상생하는 길을 찾자”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글들은 “노동운동을 그만두라”는 말로 결론을 지었다. “우리와 같은 일을 하고도 월급을 반밖에 못 받는 사람들을 우리가 나서서 돕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김씨의 말을 “시대착오”라고 반박하는 말도 들어 있었다. 참담했다.

“복직한 다음이 더 끔찍했어요.”

아내는 말한다. 김씨가 복직하기 위해 싸우는 동안 동료들은 현장을 이끄는 반장이 됐고, 팀장이 됐다. 그 동료들의 외면이 더 힘들었다. 회사의 괴롭힘은 김씨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노무관리 담당자들의 감시가 출근 전, 퇴근 후까지 이어지면서 가족들도 고통을 호소했다.


해를 넘긴 2009년 초, 김씨는 해고된 사내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복직을 요구하는 시위에 동참했다. 그해 1월17일 회사 경비대가 기습적으로 들이닥쳤고 김씨는 목을 다쳐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아내는 말리고 싶지 않았을까. 큰딸이 고3이었다. 아내 한씨는 “말릴 생각은 없었다. 대신 아이들이 이해해주지 않으면 못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씨는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한 달 뒤 복귀한 현장. 왕따는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외면만이 아니었다. 매달 걷던 친목회비를 받지 않았다. 야유회는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다녀왔다. 동료가 상을 당했을 때도 오지 말라는 말만 전해들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다쳤다. 

“변해버린 세상 때문에 아프다”

이전에는 같은 회사 동료 사이에서만 왕따가 됐다면, 이번에는 함께 일하는 하청업체 사람들까지 접촉을 꺼렸다. 출근길을 함께 걷던 하청업체 비정규직 동료는 “형님이랑 얘기 나눴다고 조회 시간에 한 소리 들었소. 이해해주소”라며 자리를 피했다. 이제 회사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없다.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원망할 사람들은 동료가 아니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들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은 눈만 봐도 서로 속마음을 다 알기 때문이다. 30년간 함께 기름밥을 먹어온 사이다. 자기 뜻이 아니라는 걸 들킬까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탈이 났다. 지난해 5월부터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그들의 진심이 아니란 걸 알아요. 그래도 미운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러면 안 되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나 봐요.” 동료를 원망하는 자신을 책망하면서 증세는 더 심해졌다. 벌써 1년이 넘었다.

아내의 몸에도 암덩이가 자라기 시작했다. 30년 동안 해고와 농성을 반복하는 남편 옆에서도 건강하게 버텨온 아내였다. 폐암을 발견한 것은 지난 7월이다. 그나마 초기인 게 다행이었다. 남편을 원망할 만했다.

“제가 몸이 아픈 건 남편 때문이 아니에요. 변해버린 세상 때문이죠. 세상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하도 열이 나서 저라도 서울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한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지난 10월11~14일 국회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 현대미포조선의 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에게 2009년 폭력사태 해결과 자택 감시 중단 등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남편은 회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다 최근 법원에서 업무방해금지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남편을 대신해서 한씨가 나섰다.

“아픈 아내를 사지로 내모는 놈이라는 생각에 그 기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한씨는 예정된 날짜보다 하루 일찍 서둘러 내려온 게 못내 아쉽다. 항생제 부작용으로 인한 가려움 때문에 버티기 힘들었다.

“대구에서 시집와서 데모라는 걸 모르고 살았어요. 남편이 40일 단식을 해도 별일 없이 살림을 했다고요.”

한씨는 1인시위 마지막 날인 10월14일 정몽준 의원실을 직접 찾기도 했다. 스스로 “겁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 일들은 회사와 관련 없다?

지난 10월19일 한씨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리던 울산 경찰청에서 다시 1인시위에 나섰다. 행안위에서는 지난해 폭행 현장에 함께 있던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상황을 질타했다. 김수정 청장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특정되지 못해서 재물손괴로만 입건 조치됐다”고 밝혔다.

김씨는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자신이 당한 과거의 폭행이나 왕따 등이 회사와 연관된다는 내용으로 기사가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김씨가 받은 업무방해금지가처분 결정에는 ‘현대미포조선을 비방하는 취지의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할 경우 1회당 10만원씩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김씨는 “비방과 비판의 차이를 구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10만원이면 그에게 적잖은 돈이다. 법원 결정 뒤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아 지난 9월 그의 월급 통장에 찍힌 수령액은 0원이다.

울산=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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